연화산 옥천사는

가람의 지붕이 마치 연꽃무늬처럼 배열되어 있어 아름답고 고즈넉한 도량입니다.
옥천사라는 이름은 팔상전(八相殿)과 금당(金堂)사이의 바위에서 감로수가 나오는 옥샘(玉泉)이 있어 붙여진 이름입니다.


통일신라 676년(문무왕16년) 의상(義湘)대사가 창건하였습니다.

남해에 <대장도감>이 설치되었을 때 팔만대장경 판각에 큰 공을 세웠던 보융화상이 고려1235년(고종22)에 크게 중창하셨습니다.

임진왜란 때는 승병이 일어나 왜적을 무찔렀으나, 이로 인해 정유재란때 왜군들의 보복을 받아 절이 소실되기도 하였습니다. 일제강점기에는 백초월 • 우태선 스님과 신화수 선생 등이 임시정부에 자금을 전달하고 2차 만세운동의 거사에 참여하는 등 경남 애국지사들의 활동 거점이었습니다.

광복 후에는 절땅 13만 5천평을 매각해 500만원(현재 물가환산 600억원 추정)을 부산대학교를 설립하는데에 기부함으로써 민족교육에 기여하였습니다.

옥천사는 근대선지식 청담스님이 출가한 사찰이기도 합니다.

대웅전을 중심으로 앞에 자방루(滋芳樓) 좌측에 탐진당(貪瞋堂) 우측에 적묵당(寂黙堂)이 있습니다. 가람의 지붕이 마치 연꽃무늬처럼 배열되어 있어 아름답고 고즈넉한 도량입니다. 옥천사라는 이름은 팔상전(八相殿)과 금당(金堂)사이의 바위에서 감로수가 나오는 옥샘(玉泉)이 있어 붙여진 이름입니다.


옥천사에는 불교문화재 1,500여점과 각종기록물 800여점이 남아 있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보안이 취약했던 70~90년대를 거치면서 다수의 성보들을 도난당해버렸습니다.

이에 옥천사는 1999년 성보박물관을 지으면서 성보문화재를 지켜내는 한편 문화재 환수를 위한 노력을 펼쳐왔습니다.

그 결과 2016년 시왕도(제2초강대왕도 보물1693호로 지정)를 프랑스에서 찾아왔고, 2017년~2019년에 걸쳐 나한상 5구를 다시 찾아오게 되었습니다.(제13 인게타존자는 미국에서 환수)

봉주르 시왕, 하와유 나한

옥천사의 중요 문화유산
National treas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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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천사 청동북(보물 제495호)

청동북은 절에서 사용하는 금속으로 만든 타악기로 절에서 대중을 불러 모으거나, 급한 일을 알리는데 사용한 도구입니다. 고성 옥천사 청동북은 고려 고종 39년(1252)년에 당대 최고의 장인인 한중서가 안양사(安養社)라는 신앙결사를 위해 만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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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천사 지장보살도 및 시왕도(보물 1693호)

옥천사 시왕도는 1744년 화승 효안(曉岸)의 주도하에 11명의 화승들이 조성했습니다. 옥천사 시왕도 중 제1진광대왕도와 제2초강대왕도가 1976년에 명부전에서 도난당했습니다. 도난당한 두 점의 시왕도 중 제2초강대왕도를 2016년 프랑스의 한 개인소장자로부터 무사히 환수 받아 가져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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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한전 목조보살좌상 및 나한상(도유형문화재 제628호)

옥천사 나한전 목조보살좌상 및 나한상은 조선후기 18세기를 대표하는 조각승 색난스님에 의해 조성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1988년 16구의 나한상중 7구를 도난당했으나 도난성보 환수운동을 펼쳐 2016년부터 2019년까지 나한상 5구를 다시 찾아왔습니다.

 

옥천사로 가는 길


승용차

대전통영간 고속도로 → 연화산 IC → 옥천사

버스

고성버스터미널 -> 옥천사 (시내버스 탑승 30분 소요)

택시

고성버스터미널 ->옥천사(약 25,000원)